성왕의 원대한 꿈이 담긴 계획도시 사비

성왕은 사비에 부소산성을 중심으로 나성을 쌓았어요.
나성은 평야 지대에 있는 사비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이에요.
나성은 흙 위에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놓고 다시 흙을 덮어 다지는 부엽공법으로 쌓았어요.
나뭇잎과 나뭇가지는 흙과 흙을 붙잡아 주고, 빗물이 빠지는 통로 역할을 해 성벽이 쉽게 무너지지 않게 해 주었어요.
이중으로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나성은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도성에는 없던 시설이었어요.
나성은 사비가 어떤 곳보다 더 안전하고 살기에 좋은 장소라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었어요.
왕궁의 뒤편에 위치한 부소산성은 외적이 침입해 왔을 때 피신하기 위해 만든 성이에요.
평상시에는 왕실의 정원으로도 사용되었어요.
부소산성은 판으로 틀을 만들고 판 안에 서로 다른 흙을 교대로 넣어 다지는 판축공법으로 만든 토성이에요.
백제 사람들은 한성의 풍납토성과 웅진의 공산성도 이 방법을 이용하여 만들었어요.
부소산성을 쌓는 백성들(백제문화단지)과 복원한 나성의 모습(충남 부여군)
나성 안에는 왕궁을 지었어요.
사비의 왕궁 터는 오랫동안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어요.
그러나 최근 부소산성 아래 관북리 유적이 발견되면서 발굴을 통해 왕궁 터를 추측할 수 있게 되었어요.
관북리 유적에서는 왕궁으로 예상되는 대형 건물터와 나무로 지은 창고, 연못, 도로, 배수로가 발견되었어요.
출토된 유물 중에는 40m 길이의 수도관이 눈길을 끌었어요.
기와를 조립해 만든 관을 나무 수조에 연결한 것인데,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어요.
관북리 대형 건물지(백제세계유산센터)와 관북리 수도시설(국립부여박물관)
왕궁을 중심으로 10m가 넘는 남북도로와 동서도로도 확인되었어요.
도로의 좌우에는 하수구 시설도 있었어요.
하수구는 도랑을 파고 양 벽면에 두꺼운 판자를 대어 물이 잘 흘러가게 만들었어요.
잘 정비된 도로망과 집터, 그리고 수도시설을 통해 사비가 오랜 준비를 거쳐 세심하게 건설된 계획도시였음을 알 수 있어요.
사비성 한쪽으로는 금강이 굽이쳐 흐르고 있어요.
금강은 사비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그렇지만 성왕은 금강을 방어용으로만 사용하지 않았어요.
부소산 서쪽 기슭의 백마강 가에 구드래 선착장을 만들었어요.
구드래항을 이용해 백제는 일본, 중국과 교류를 하였어요.
구드래항은 중국과 일본, 그리고 고구려와 신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귀한 물건들을 서로 사고팔기 위해 북적거렸을 거예요.
부소산성 아래 구드래항의 현재 모습과 백제금동대향로(문화재청)
사비의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 금동 대향로를 통해서도 백제가 여러 나라와 교류했음을 알 수 있어요.
향로에는 16명의 사람과 39마리의 동물이 조각되어 있어요.
그중에는 호랑이와 사슴과 같이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었던 동물도 있지만, 코끼리와 원숭이처럼 우리에게 낯선 동물도 조각되어 있어요.
아마도 백제 사람들은 구드래항에서 만난 다른 나라 사람들을 통해 이 동물들에 대해 알게 되었을 거예요.
넓은 세계와 교류하며 국제도시로서 크게 번성했던 사비는 강성한 백제를 원했던 성왕의 꿈이 담겨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