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문화

고구려 유민 출신인 대조영은 698년에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이끌고 발해를 세웠어요.
발해가 세워지면서 우리 역사는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함께 발전해가는 남북국의 형세를 이루었지요.
발해는 고구려 유민들이 중심이 되어 세워진 나라였어요.
그래서 발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어요.
발해의 무왕이 일본에 보낸 편지에도 고구려를 계승하고 풍속을 이어받았다는 내용이 들어 있지요.
이처럼 발해는 고구려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중국의 당나라 문화도 받아들였어요.
또한 나라를 세우는 데 함께 힘을 보탠 말갈인들의 문화도 자연스럽게 섞이게 되었어요.
이렇게 해서 발해는 자신들의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며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어요.
현재 중국의 헤이룽장성 닝안은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이 있던 곳이에요.
발해는 수도를 네 번 옮겼는데 그중 상경은 가장 오랜 기간 수도로서 번영한 곳이에요.
상경성은 당시 중국 당나라의 장안성과 같은 모양을 갖춘 계획도시였어요.
현재 옛 상경성 자리에는 많은 궁궐 터와 사찰 터, 집터 그리고 다양한 유물의 자취가 남아 있어요.
이를 통해 발해의 문화를 짐작할 수 있어요.
상경성 터 항공사진
동북아역사재단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성 유적의 궁궐 터에서 발견된 온돌 장치, 절터에서 나온 치미와 연꽃무늬 막새기와, 토기 등을 살펴보면 고구려 양식을 따랐음을 알 수 있어요.
또한 상경성 유적에서만 무려 10여 개의 대규모 절터가 발견되어서 당시 발해에서 불교가 널리 유행했음을 알 수 있어요.
발해에서는 불교가 유행하면서 불교 미술이 발달하였어요.
수도였던 상경성 유적과 동경성 유적에서는 절터와 함께 많은 불상이 발견되었어요.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탑과 석등을 볼 수 있지요.
발해 불상에는 흙을 구워 만든 것이 많으며, 두 명의 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는 이불병좌상, 돌로 조각한 석불 등도 있어요.
탑은 당의 양식을 따라 벽돌로 만들었는데 그중에는 무덤 위에 세운 것도 있어 발해만의 특색을 보여 주고 있지요.
한편, 절에 세운 석등은 높이가 6m에 이를 만큼 웅장하여 발해인의 기상을 엿볼 수 있답니다.
발해는 불교 외에 유교 문화도 발달했어요.
유학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을 설치하기도 하였고, 당나라로 유학을 간 학생들이 당나라에서 빈공과라고 불리는 외국인을 위한 과거 시험에도 많이 합격했어요. 그중에는 신라 유학생들과 1등 자리를 다투기도 했어요.
한편, 발해의 무덤은 대개 고구려 양식으로 만든 것이 많으며, 당나라 양식을 따른 것도 발견되었어요.
발해의 정혜 공주 무덤은 고구려 무덤 양식을 계승한 굴식 돌방무덤이에요.
정혜 공주 무덤보다 늦게 만들어진 정효 공주 무덤은 당나라 양식을 따른 벽돌무덤으로, 무덤 안에 그려진 벽화도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그림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제부터 발해의 주요 문화유산을 살펴보면서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알아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