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유학

발해는 불교뿐만 아니라 유학도 발달하였어요.
나라를 다스릴 때 유학 사상을 반영하였고, 주자감이라는 유학 교육 기관을 세워 인재를 길러냈지요.
당에 파견된 유학생 중에는 외국인을 위한 과거 시험인 빈공과에 합격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1등 자리를 놓고 신라 유학생과 경쟁을 벌인 일은 유명한 일화예요.
또 정혜 공주와 정효 공주의 묘지석에 유학 경전의 내용이 인용될 정도였어요.
이뿐만이 아니라 일본 한시집에 남아 있는 발해 사신 양태사와 왕효렴의 시를 보면 발해의 한문학 수준을 짐작할 수 있어요.
밤에 다듬이 소리를 듣다
서리가 차가운 하늘에 달빛이 비치어 은하수 밝은 밤,
나그네는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에 감회가 남다릅니다.
이 긴 밤을 조용히 앉아 있자니 수심에 애가 타는데,
홀연히 들려오는 것은 이웃 아낙네의 다듬이 소리
……
고국 떠난 뒤로는 저 소리 들어보지 못했는데,
이제 타향에 있으면서 고향에서 듣는 것 같습니다. ……
멀리 가녀린 몸은 구슬 같은 땀에 젖어 가련하고,
이미 옥같이 고운 팔은 점점 지쳐 가고 있겠지요.
……
-『경국집』-
위 글은 발해의 시인 양태사가 지은 한시에요.
양태사는 발해 문왕 때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이 시를 지었는데, 일본에서 편찬한 한시집인 『경국집』에 전하고 있어요.
귀국을 앞둔 어느 가을밤, 이웃에서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를 듣고 지은 시로 지은이의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져요.
정효 공주 묘비(중국 지린성 룽터우 산 출토)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