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적의 침입을 이겨낸 고구려 산성

외적의 침입을 이겨낸 고구려 산성

M 지금 0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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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4보루(서울 광진구)

문화재청




“여보게. 큰일 났네. 이번에도 외적이 쳐들어왔다고 하네.”


“걱정 말게나. 우리 고구려에는 튼튼한 산성들이 있지 않은가.”


삼국 시대 고구려는 중국에서 일어난 강대국들의 잦은 침입을 막아내며 동북아 최강 국가로 우뚝 선 나라였어요. 

그것은 고구려를 튼튼히 보호해준 수많은 성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고구려에는 어떤 성들이 있었을까요? 그 성들은 고구려를 어떻게 지켜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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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의 나라’ 고구려
M 지금 0 339 2024.06.30
성은 적을 막기 위하여 흙이나 돌로 높이 쌓은 큰 담이에요.사람들은 성을 쌓아 자신이 속한 마을이나 나라를 지켜냈어요.처음에는 주위에 나무로 만든 목책을 치다가, 흙을 다져 쌓는 토성으로 발전하였어요.그러다 전쟁이 잦아지고 규모가 커짐에 따라 수만 개의 돌을 쌓아 올린 튼튼한 석성을 쌓게 되었지요.지금도 고구려 영토였던 중국 지역 일대를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서 고구려 산성을 만날 수 있어요.오녀산성, 환도산성, 국내성, 백암성, 안시성 등등. 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에만 200여 개의 고구려 성이 남아 있다고 하니 엄청나게 많지요.지금의 북한 지역에도 평양성, 대성산성, 황룡산성, 철옹성 등의 고구려성이 많이 남아 있어요.물론 남한 지역에서도 고구려성이 있어요.한탄강 주변 절벽을 따라 있는 소규모 성곽이나, 서울 아차산의 산마루를 따라 있는 고구려 보루들, 심지어 대전 근처의 금강 변에서도 고구려의 산성이 발견되고 있지요.옛 고구려 영토가 있었던 요동 지역에 있는 고구려의 성은 광활한 대평원이 아니라 산간 지대와 평지의 접경 지점, 산의 안쪽에서 볼 수 있어요.고구려 사람들은 평지보다 산 중턱에 성을 쌓았어요.삼면이 높은 산이나 절벽으로 막혀 자연방어가 가능하고, 다른 한 면은 경사가 완만하여 출입이 가능한 곳이지요.산성은 쌓기는 어렵지만 일단 쌓으면 적은 군사로도 쉽게 방어할 수 있었지요.고구려는 산성을 중심으로 적을 방어하였어요.철옹성(평안북도 영변)동북아역사재단‘무쇠로 만든 항아리처럼 튼튼하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의 고구려성. 철옹성은 ‘철옹성처럼 튼튼하다’처럼 지금도 빗대는 말로 쓰이고 있어요.연천 호로고루(경기 연천군)임진강 강가에는 주요 길목마다 고구려성이 배치되어 있어요. 그 가운에서도 호로고루는 상류에 위치하여 배를 타지 않고 임진강을 건널 수 있는 곳이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해당해요.문화재청고구려 산성은 군사 방어선인 동시에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어요. 성주들은 장군인 동시에 지방을 다스리는 지방관이었어요. 각성에는 군대를 지휘하는…
평지성과 짝을 이룬 산성
M 지금 0 284 2024.06.30
고구려 사람들은 산과 평지에 짝을 이루어 성을 쌓았어요.평소에는 평지성을 중심으로 생활하다가 외적이 침략하면 산성으로 옮겨가 방어를 했지요.평지성은 주로 교통이 편리하고 넓고 평평한 곳에 쌓았어요.살기에 공간이 넓고 물을 구하거나 물자를 보급하기 쉬워 살기 좋았어요.하지만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기 힘들다는 약점이 있었어요.반면 산성은 길이 험하고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곳에 쌓았어요.산 중턱에 쌓아 올린 두터운 돌 성벽은 성벽을 공격하는 대형장비 없이는 무너뜨리기 힘들었어요.설령 성벽 공격용 장비들이 있더라도 이들 무기를 산 중턱까지 끌고 올라가기는 불가능했어요.좁은 산길이라 한 번에 많은 군사가 공격하기도 힘들고, 성벽이 있는 산 중턱까지 올라오느라 지칠 수밖에 없었지요.때문에 산성은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매우 유리하였지요.하지만, 평지성과는 달리 물자를 구하기 힘들어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불리하였지요.이에 고구려 사람들은 산성과 평지성의 장단점을 고려해 일찍부터 도성에는 평지성과 산성을 모두 쌓았어요.가령 평상시에는 평지성에 살다가 외적이 침입하는 등의 비상시에는 산성으로 들어가 방어하였지요.즉 평지성이 고구려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하는 곳이었다면, 산성은 전쟁에 대비한 피난과 방어를 위한 곳이었지요.그래서 고구려는 도읍을 세울 때 늘 평지성과 산성을 함께 쌓았어요.중국 지안의 국내성과 환도산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지요.고구려는 도성이 있는 곳을 제외하면 대체로 산성을 훨씬 더 많이 만들었어요.항상 주변의 여러 세력과 대결해야 했으니 방어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요.산성을 쌓기 위한 장소와 쌓는 모양은 백성들이 피난해서 장기간 살아갈 수 있는지, 군대의 지휘와 방어가 손쉬운지 등을 두루 살펴서 결정했어요.그러기 위해서는 산과 평지가 만나는 자리여야 하고 산속에 넓고 평평한 곳이 있어야 하며, 주변에 강이 흘러 물을 쉽게 얻을 수 있고 교통도 편리한 곳이어야 하지요.또한 고구려 사람들은 군사 방어와 지역 거점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
수와 당의 대군을 막아 낸 고구려 산성
M 지금 0 370 2024.06.30
고구려는 당의 침입에 대비해 송화강 연안 평야 지대에서 요동 평원 남단까지 천리에 걸쳐 성을 쌓았어요.성을 천리에 걸쳐 일렬로 기다랗게 쌓았다고 하여 천리장성이라 불러요.천리장성에는 성과 성 사이에 일정한 거리마다 수십 명의 군사가 머무를 수 있는 크고 작은 보루(요새)까지 세웠어요.정말 물샐틈없는 방어막을 만들었지요.고구려가 수와 당의 대군에 맞서 치열하게 전쟁을 치른 곳은 랴오둥이라 불리는 랴오허 동쪽 지역이에요.그곳에는 어떤 고구려 성이 있을까요?요동 평원의 평지성인 요동성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어요.이 성을 점령하면 요동 지방을 지배할 수 있었지요.612년 수 양제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요동성을 포위했지만, 이곳 요동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고구려 침공에 실패하였지요.고구려 산성이번에는 당군이 고구려를 쳐들어왔어요.당 태종은 수 양제와는 달리 요동성 주변의 개모성, 건안성 등을 먼저 함락시킨 다음 요동성을 포위하여 함락시켰어요.하지만 당 태종은 또 다른 고구려 방어선인 안시성에서 그만 발목이 잡히고 말았지요.당군은 안시성을 포위한 채 성벽보다 높은 커다란 흙산까지 만들어 공격하였지만, 안시성의 고구려 사람들은 이를 잘 버텨 당군을 물리칠 수 있었답니다.오골성(중국 랴오닝성)봉황산성이라고도 부르며 요동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이에요.동북아역사재단백암성 성벽(중국 랴오닝성)성벽 전체가 하얀 돌로 되어있는 성으로 방어를 위한 시설인 치가 성 밖으로 돌출되어 있어요.동북아역사재단안시성과 건안성, 신성 등이 바로 이런 곳에 자리 잡은 천혜의 요새였어요.이러한 지형의 이점 덕분에 수와 당의 수십만 대군이 몇 달을 공격해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이지요.엄청난 대군이 몰려와도 수많은 고구려성을 뛰어넘어 도성까지 공격하기는 매우 힘들었지요.이처럼 수많은 산성을 연결해 물샐틈없는 방어망을 구축했으니 10만, 100만 대군이 와도 겁나지 않았지요.때문에 고구려 침략을 논의하던 외적의 장군들도 입을 모아 “고구려는 산에 의지해 성을 잘 쌓았기 때문에 쉽게…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 이야기가 서려 있는 온달산성
M 지금 0 347 2024.06.30
온달산성은 고구려 온달 장군의 이야기가 전해오는 성이에요.온달 장군은 평강 공주와의 사랑으로 유명한 바로 그 ‘바보 온달’이에요.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고구려 25대 왕인 평강왕(재위 559~590) 때의 일이에요.평강왕에게는 예쁜 딸 평강 공주가 있었어요.그런데 공주는 어려서부터 잘 울었어요. 그럴 때마다 왕은 공주에게 이렇게 말했어요.“공주, 그만 울어라. 그렇게 자꾸 울면 온달에게 시집 보낸다.”온달은 이집 저집 구걸하며 홀로 눈먼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어요.외모도 우스꽝스럽고 볼품없어 사람들은 그를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어요.평강왕은 공주가 울 때마다 공주의 우는 버릇을 고쳐주려 농담처럼 바보 온달에게 시집 보낸다며 공주를 달랬던 것이지요.시간은 흘러 어느덧 평강 공주가 결혼할 나이가 되었어요. 그러자평강왕은 훌륭한 귀족 청년에게 시집보내고자 하였어요.그런데 평강 공주는 이를 완강히 거절하였어요.“싫습니다. 폐하, 저는 제가 울 때마다 말씀하셨던 것처럼 온달에게 시집을 가겠습니다.”평강왕은 이런 공주의 태도에 매우 당황스러웠어요.“오~ 얘야, 그건 네 울음을 그치게 하려 했던 거짓말이다.”“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온달과 꼭 결혼하겠습니다.”평강왕은 불같이 화를 냈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공주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어요.결국 공주는 궁궐에서 쫓겨나게 되고, 공주는 그 길로 물어물어 온달의 집을 찾아갔어요.온달은 믿기지 않았지만, 공주의 말을 믿고 결혼을 하였지요.평강 공주는 궁궐에서 가져온 패물을 팔아가며 바보 온달에게 무술과 학문을 닦도록 하였어요.온달은 평강 공주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실력을 키워나갔어요.그렇게 세월이 지났어요.온달은 매년 3월 3일을 맞이하여 열리는 큰 사냥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어요.온달은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맘껏 뽐냈지요.“아니, 저렇게 무술을 잘하는 청년이 누구인가?”“온달이라고 합니다.”평강왕은 예전 바보 온달의 모습을 떠올리며 깜짝 놀랐어요.그러다 북주의 무제가 고구려에 쳐들어왔어요.이때 온달은 고구려 군사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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