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을 야외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경주 남산은 경주시 남쪽에 있는 산이에요.
높이 500m 정도 되는 높지 않은 산으로 토함산과 함께 경주의 대표적인 산이에요.
신라 사람들은 이곳을 특별하게 여겼어요.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도, 신라 왕실의 별궁이 있던 포석정지도 경주 남산 자락에 있어요.
포석정지는 신라왕들이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는데, 후삼국 시대에 신라 경애왕이 후백제의 공격으로 견훤에게 죽음을 맞게 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국력이 약했던 신라 말의 상황을 보여주는 곳이에요.
남산에는 신라 건국에서부터 신라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던 순간의 유적들, 그리고 신라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유적들이 곳곳에 숨어 있지요.
경주 나정과 포석정지
문화재청
남산의 유래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어요.
옛날 서라벌(신라)에 남녀 두 신이 찾아왔어요. 두 신은 서라벌의 경치를 둘러보며 빼어난 모습에 감탄했어요.
“경치가 멋지군요! 우리가 살 곳은 이곳인 듯합니다.”
그때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던 한 처녀가 이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보니 산처럼 생긴 남녀가 가까이 오고 있었어요.
깜짝 놀란 처녀는 소리를 지르며 기절했어요.
“산 봐라. 사람 살려!”
그 순간 두 신은 산으로 변했대요.
이 산이 바로 경주 남산과 망산이에요.
그런데 두 신은 왜 산으로 변했을까요? ‘산 같은 사람 봐라!’ 하고 외쳐야 하는데 ‘산 봐라!’하고 외쳤기 때문이라고 전해요.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 신라 사람들은 남산을 신이 변해 만들어진 신성한 곳으로 여겼어요. 이런 특별한 곳이니 왕이 나올 만하지요?
경주 남산에 모여 나랏일을 의논하면 모두 잘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요.
신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남산에 신령이 나타나 계시를 주었다는 기록도 전하지요.
한편, 경주 토함산에 세워진 석굴암과 불국사로 알 수 있듯 신라 사람들은 이 땅을 부처의 나라로 만들려고 했어요.
신라 제23대 법흥왕부터 제28대 진덕왕까지 불교식 왕명을 쓰고 불교식 이름을 붙였어요.
수도인 금성(경주) 곳곳에 절을 세우고, 탑을 높이 올렸지요.
황룡사 9층 목탑 등 큰 규모의 탑을 세워 나라를 지키려고 했어요.
백성들에게 ‘왕이 곧 부처’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던 불교는 신라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일반 백성들에게 널리 퍼져나갔어요.
불교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는 곳을 수미산이라고 해요.
신라 수도인 경주에 부처의 나라를 세우려고 했으니, 경주 남산은 수미산에 해당하는 곳이지요.
그래서일까요? 경주 남산 곳곳에서 절과 탑, 불상을 볼 수 있어요.
지금도 남산에는 100여 곳의 절터와 80여 구의 석불이 남아 있어요.
석탑도 60여 기나 남아 있지요.
한 마디로 산 전체가 야외 박물관과 같아요.
남산 주변 마을 이름도 미륵골, 탑골, 부처골 등 불교와 관련된 이름이 많아요.
지금도 경주 남산에는 불공을 드리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요.
신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왕이나 귀족은 물론 일반 백성들도 여러 이유로 경주 남산을 찾았을 거예요.
이웃 나라의 침입을 막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었을 거예요.
무더운 여름에도, 눈보라가 치는 겨울에도.
남산을 찾아 부처님께 기도하는 신라인들
지금부터 신라인이 남긴 보물이 가득한 경주 남산을 돌아보며 그들의 바람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