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 부처의 가르침을 찾아 당으로 가다

신라의 불교는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와 함께 공인되었고, 점차 백성들 속으로 널리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어요.
삼국을 통일한 이후 신라에서는 불교가 더욱 화려하게 꽃을 피웠지요.
전국 각지에 많은 절과 탑이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많은 승려들이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을 하였지요.
이차돈 순교비(국립경주박물관)
이차돈의 목을 베자 하얀 피가 솟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전해짐
국내에서 불교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낀 승려들은 부처의 나라 천축국(인도)에서 새로 들여온 경전과 최신의 불교 이론을 접할 수 있는 당으로 유학을 갔어요.
유학길에 오른 승려들은 열심히 불교 경전을 구하고 깊이 있게 불교를 공부했어요.
당으로 유학을 떠난 많은 신라의 승려 중 한 사람이 바로 혜초랍니다.
혜초는 어린 나이에 일찍이 당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당의 남쪽지방인 광저우에서 천축국에서 온 승려 금강지를 만나 제자가 되었어요.
금강지의 가르침을 받으며 혜초는 인도어로 쓰인 불교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일도 했어요.
“4년 동안 천축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했는데도 여전히 마음속의 부족함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스승님! 부처님은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깨달음이 불경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부처님의 나라 천축국에 가보는 것은 어떠하겠느냐?”
혜초의 질문에 금강지가 천축국 순례를 추천하였어요.
그러자 다른 제자가 나서 말을 했어요.
“하지만 스승님! 천축국으로 떠난 많은 스님들 대부분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 험한 길을 꼭 가야할까요?”
당시 인도로 가는 길은 높은 파도를 헤치며 오랜 기간 배로 항해를 하거나, 높은 산과 사막을 건너는 방법 밖에는 없었어요.
멀고도 험한 길 뿐만 아니라 가는 도중에 병에 걸리거나 도적을 만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지요.
당시 중국에 유학한 신라의 승려는 180명에 이르렀고, 이중 인도로 떠났던 사람은 15명이었어요.
이들 중 10명이 여행길에서 목숨을 잃었고, 중국이나 신라로 돌아온 사람은 5명뿐이었어요.
이처럼 깨달음을 얻기 위한 2만km의 인도 여행은 목숨을 건 위험한 도전이었어요.
혜초의 순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