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성지, 천축국을 가다

깨달음에 목말랐던 혜초는 드디어 인도로의 여행을 결심했어요.
혜초는 중국 광저우를 출발해 바닷길을 이용해 인도로 향했어요.
인도를 향했던 많은 승려들이 이용하던 길이었어요.
혜초 보다 200년 앞서 우리나라 승려 중 가장 먼저 인도를 찾은 백제의 겸익 스님도 이 길을 따라 여행을 하였지요.
달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뜬구름은 너울너울 돌아가네.
그 편에 감히 편지 한 장 부쳐 보지만
바람이 거세어 화답이 안 들리는구나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
남의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
일남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으로 날아가리.
배를 타고 중국 광저우를 떠난 혜초는 동남아시아 해안을 따라 이동하였어요.
여행이 한창일 때 위의 시 한편을 남겼요.
시에는 홀로 떠난 여행길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잘 담겨있지요.
시 속에 계림은 신라의 도읍 경주를 말하고, 일남은 지금의 베트남일거라 추측하고 있어요.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를 거쳐 혜초는 동천축(동인도)에 도착했어요.
천축국에 도착한 혜초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이었어요.
“아이고! 망측해라. 이보시오, 어찌 그리 발가벗고 다니시오? 옷이 없으신가요?”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물이나 식물을 살생해야 하지 않소. 우리는 살생을 줄이기 위해 이렇게 지낸답니다.”
“아! 그렇게 깊은 뜻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며 혜초는 크게 감명을 받았어요.
동천축에 도착한 혜초는 가장 먼저 불교가 크게 번성했던 옛 마가다 왕국의 유적들을 돌아보았어요.
부처가 태어난 곳, 불교를 처음 전파한 곳, 돌아가신 곳 등 불교의 여러 성지들을 찾아 참배하고 돌아보았어요.
그리고 중천축으로 넘어갔지요.
혜초가 만난 천축국 스님들
혜초는 여행을 하면서 절이나 탑 등 불교 유적뿐만 아니라 그 나라에서 보고 느낀 점, 풍습이나 정치 상황까지 기록으로 남겼어요.
혜초가 보았던 천축국의 모습은 이러했어요.
다섯 천축국의 법에는 목에 칼을 씌우거나 매를 때리는 형벌과 감옥은 없다.
오직 죄인에게는 죄의 무거움에 따라 벌금을 물릴 뿐 사형도 없다.
이곳은 기후가 아주 따뜻하여 온갖 풀이 항상 푸르고 서리나 눈은 볼 수 없다.
쌀 양식과 떡, 보릿가루, 우유 등을 먹으며, 간장은 없고 소금을 먹는다.
흙으로 구워 만든 냄비에 밥을 익혀 먹지, 무쇠로 만든 가마솥은 없다.
왕이나 벼슬아치, 부자들은 전포로 만든 옷을 입고, 스스로 지어 입는 사람은 한 가지만 입으며, 가난한 사람은 반 조각만 몸에 걸친다.
낙타, 노새, 당나귀, 돼지 등의 가축은 기르지 않는다.
양과 말은 아주 적어 오직 왕만이 소유하고 있다.
이밖에 수령과 백성들은 모두 다른 가축은 기르지 않고 오직 소를 기르는 것만 좋아한다.
우유와 버터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살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에서 가축을 잡는다든가 고기를 파는 곳을 볼 수가 없다.
동천축에서 시작해 남천축까지 둘러 본 혜초는 인도 북쪽의 인더스강까지 나아갔어요.
인더스강 주변으로 서천축이 있었는데 이곳은 종교가 다른 아랍인들의 침략을 받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