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 반란을 일으키다

세계와 교류하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장보고에게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어요. 왕위 다툼에서 밀려난 김우징이 청해진으로 피신해 왔어요. 장보고는 청해진으로 몸을 피해 온 김우징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민애왕을 죽이고, 김우징(신무왕)을 왕위에 앉혔어요
김우징이 왕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죽고, 그의 아들이 왕이 되었어요. 문성왕은 아버지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려 하였지요. 그러나 진골 귀족들은 가뜩이나 힘이 센 장보고가 왕과 결혼을 통해 더 강해질 것이라며 불안해했어요. 그래서 진골 귀족들은 한 목소리로 천민 출신인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맞이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결혼을 막았어요.
약속을 어긴 신라 조정에 장보고는 몹시 화가 났어요. 청해진의 군사를 이끌고 다시 반란을 일으켜 복수를 하려고 했지요. 이 소식을 전해들은 문성왕은 장보고를 죽이기로 하고 염장을 청해진에 자객으로 보냈어요. 염장은 이전에 반란을 일으켰을 때 장보고의 부하였어요. 뜻밖에 청해진을 찾아온 염장을 향해 장보고가 물었어요.
“경주에 있을 장군이 여기는 무슨 일이오?”
“왕의 잘못을 따지다가 왕의 미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옛날처럼 장군 밑에 들어가 해를 면하고자 합니다. 받아주십시오.”
“용감무쌍한 장군을 얻는 것은 우리 군대에 날개를 다는 것과 같소. 청해진에 온 것을 환영하오.”
장보고는 잔치를 열어 염장을 크게 환영했어요. 잔치가 길어지면서 장보고는 술에 취해갔죠. 방심하고 있던 장보고를 염장이 갑작스럽게 덮쳤어요. 그리고 장보고의 검을 빼앗아 휘둘렀어요. 단칼에 장보고가 쓰러지자 주위의 군사들이 놀라고 무서워서 모두 땅에 엎드려 항복을 하였어요.
846년, 동아시아 무역의 한 축을 담담하던 해상왕 장보고는 이처럼 허무하게 죽고 말았어요. 그가 죽자 청해진은 폐쇄되었고, 청해진의 주민들은 벽골군(지금의 김제)으로 강제 이주되었어요. 장보고와 함께 청해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동아시아 해상권은 신라인에게서 중국 상인들과 아라비아 상인들에게 넘어가고 말았답니다.
당에서 활동한 장보고는 좁은 신라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활약하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청해진을 세우고 당과 일본을 오가며 무역을 했지요. 장보고의 청해진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었다면 신라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요?
통일신라 시대 해상 교역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