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신라, 강해지는 백제

흔들리는 신라, 강해지는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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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이 한강을 차지한 이후 신라의 사정은 계속 나빠졌어요. 

고구려와 백제는 끊임없이 신라를 공격하였고, 신라 귀족들 사이의 권력 다툼이 커져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생겨났어요. 

게다가 가뭄과 흉년이 자주 와서 백성의 생활도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어요.


성왕의 죽음과 관산성 전투의 대패로 흔들렸던 백제의 국력은 무왕의 노력으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어요. 

무왕과 그의 아들 의자왕은 회복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신라를 집요하게 공격하여 40여 개의 성을 빼앗았어요. 

그리고 고구려와 연합해 신라가 당으로 가는 바닷길의 관문인 당항성을 공격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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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군의 모습

백제군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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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성을 백제가 빼앗다
M 지금 0 341 2024.07.04
의자왕 시기 백제의 영토642년, 의자왕은 윤충을 보내 합천에 위치한 대야성을 공격하게 하였어요.대야성은 80년 전 진흥왕 때 멸망한 대가야의 옛 성으로, 사방이 강과 해자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였지요.또한 신라의 심장부였던 대구·경주로 바로 이어지는 요충지였어요.백제로부터 경주에 이르는 가장 짧은 길이기도 했지요.때문에 신라로서는 꼭 지켜야하는 곳이었어요.대야성의 성주는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이었어요.“성주님, 1만쯤 되어 보이는 백제군이 양쪽으로 나뉘어 오고 있다 하옵니다.”“뭐시라? 1만이 되는 군대가 대야성 코앞까지 올 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송구하오나 적들이 험한 산길로 돌아와 수비병들이 보지 못한 듯합니다.적의 장수는 윤충이라 하옵니다.”“윤충은 백제가 자랑하는 천하의 명장이니, 맞서 싸우기 보다는 성을 지키는 것이 상책이다. 성문을 닫고 모두 성벽에 올라 지키도록 하라.”얼마 되지 않아 대야성은 완전히 포위되었고, 백제군의 거센 공격이 계속되었어요.신라군은 성을 지키려고만 했지 감히 성문을 열고 나아가 백제군에 맞서 싸우려 하지 않았지요.신라군은 성에 의지하며 구원군을 기다렸어요.김품석에게는 검일이란 부하 장수가 있었어요.검일은 얼마 전 성주에게 그의 아내를 빼앗겨 깊은 앙심을 품고 있었지요.대야성이 포위되자 검일은 백제군과 내통하여 성에 있는 곡물 창고에 불을 질렀어요.검일의 배신으로 성 안의 군량미가 모두 없어지고 싸울 의지가 꺾인 병사들과 백성들 사이에서 항복하자는 소리가 흘러 나왔어요.대야성 전투(합천박물관)김품석은 부하를 시켜 윤충에게 말했어요.“만약 장군이 우리를 죽이지 않는다면 성을 바치고 항복하겠습니다.”“항복한다면 그대와 백성의 목숨은 보전해 줄 것이오. 태양을 두고 맹세합니다.”윤충의 말을 믿고 김품석은 백성들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가려 했어요. 그러자 부하 장수 죽죽이 길을 막고 말했어요.“백제는 말을 쉽게 바꾸는 나라입니다. 윤충은 필시 우리를 유인하여 포로로 만들 것입니다. 쥐새끼처럼 숨어서 사는 것보다 호랑이처럼 싸우다…
고구려와 당에 구원을 요청한 김춘추
M 지금 0 216 2024.07.04
김춘추는 대야성에서 김품석과 함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어요.게다가 이 시기에 신라는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채 백제에게 많은 성을 빼앗기고 있었어요.크나큰 신라의 위기였어요.김춘추는 나라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먼저 떠오른 생각은 예전처럼 강한 백제군을 고구려군의 도움을 받아 물리치는 것이었어요.김춘추는 죽음을 무릅쓰고 고구려로 가 구원병을 요청했어요.“포악한 백제가 군대를 몰아 우리 신라를 침범했습니다. 대왕의 군대를 얻어 백제를 몰아내고 치욕을 씻고자 합니다.”“죽령은 본래 우리 땅이니 그곳을 돌려준다면 군사를 보내줄 것이오.”“대왕께서는 이웃의 어려움을 도와 이웃과 잘 지낼 뜻은 없고, 다만 사신을 위협하여 땅을 요구하십니다. 지금 저에게는 죽음이 있을 뿐 입니다.”죽령 이북 땅을 돌려달라는 고구려의 요구는 신라 입장에서는 들어주기 힘든 조건이었어요.김춘추가 고구려의 요구를 거절하자 연개소문은 그를 별관에 가두었어요.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하는 김춘추나라를 구하러 왔던 김춘추는 자칫 목숨을 잃을 판이었어요.위험에 처한 김춘추는 마침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고는 보장왕에게 '신라로 돌아가 선덕여왕께 청해서 고구려의 요구를 들어 주겠다'는 거짓 약속을 하였어요.마침 고구려 첩자가 들어와 김유신이 군사를 이끌고 김춘추를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으려 한다는 정보를 연개소문에게 알렸어요.당의 위협 속에서 신라와의 전쟁을 치룰 여유가 없었던 연개소문은 어쩔 수 없이 김춘추를 신라로 돌려보냈어요.가까스로 신라로 돌아온 김춘추는 고구려의 도움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확신했어요.고구려를 버린 김춘추는 당과의 연합을 모색하였어요.당시 당 태종은 안시성 전투에서 고구려에게 패하고 울분을 삭이고 있는 중이었지요.거친 바닷길을 건너 당에 도착한 김춘추는 당 태종을 만난 고구려 정벌에 앞서 백제를 칠 것을 제안했어요.안시성에서 패했던 당의 입장에서도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해서는 남쪽에서 신라의 협공이 필요하다는 것을…
김유신이 대야성을 되찾다
M 지금 0 222 2024.07.04
648년, 김춘추가 당에 원군을 요청하러간 사이 김유신은 대야성을 공격하였어요.잘 훈련된 군사들을 이끌고 대야성에 이르자 백제군이 미리 준비해 성을 수비하고 있었지요.여러 차례 성을 공격하던 김유신은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는 체하며 백제군을 옥문곡으로 유인하였어요.백제군은 신라군을 가볍게 여겨 한꺼번에 많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쫓아왔어요.옥문곡에 백제군이 당도하자 매복하고 있던 신라군이 앞뒤에서 일어나 돌을 굴리고 활을 쏘며 공격하였어요.예상하지 못한 매복에 걸린 백제군은 우왕좌왕 하다 크게 패하였어요.백제 장수 8명이 사로잡히고 죽거나 포로가 된 병사가 1천명에 달했어요.대야성을 되찾은 김유신은 백제군 진영에 사자를 보내서 협상을 요구했어요.“대야성 성주 김품석과 그의 아내가 너희 나라 감옥에 묻혀 있다. 그런데 너희 장군 8명이 나에게 잡혀 엉금엉금 기면서 살려 달라고 청하는 것을 보니, 나는 여우나 표범도 죽을 때는 머리를 제 살던 곳으로 향한다는 뜻이 생각나 차마 죽이지 못하고 있다. 이제 너희가 죽은 두 사람의 뼈를 보내 살아 있는 여덟 사람과 바꾸는 것이 어떠한가?”극적으로 대야성과 김춘추의 사위와 딸의 유골을 되찾은 김유신은 승기를 타고 백제 땅으로 들어가 20성을 공격하여 빼앗았어요.대야성을 잃었던 신라는 김춘추와 김유신의 노력으로 성도 되찾고 당의 원병도 얻을 수 있었어요.대야성을 되찾는 과정에서 김춘추와 김유신은 신라를 이끄는 대표적인 인물이 떠올랐어요.신라를 이끈 두 사람의 활약으로 대야성에서 시작된 백제와 신라 사이의 전투는 결국 백제의 멸망으로 마침표를 찍었어요.신라군이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함락하였을 때 김춘추의 아들 법민이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을 말 앞에 꿇어 앉히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하였어요.“예전에 너의 아비가 나의 누이를 억울하게 죽여서 옥중에 묻은 적이 있다. 그 일은 나로 하여금 20년 동안 마음이 아프고 골치를 앓게 하였는데 오늘 너의 목숨은 내 손안에 있구나!”무령왕으로부터 시작해 성왕, 무왕, 의자왕을 이어오며 오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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