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이 대야성을 되찾다

648년, 김춘추가 당에 원군을 요청하러간 사이 김유신은 대야성을 공격하였어요.
잘 훈련된 군사들을 이끌고 대야성에 이르자 백제군이 미리 준비해 성을 수비하고 있었지요.
여러 차례 성을 공격하던 김유신은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는 체하며 백제군을 옥문곡으로 유인하였어요.
백제군은 신라군을 가볍게 여겨 한꺼번에 많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쫓아왔어요.
옥문곡에 백제군이 당도하자 매복하고 있던 신라군이 앞뒤에서 일어나 돌을 굴리고 활을 쏘며 공격하였어요.
예상하지 못한 매복에 걸린 백제군은 우왕좌왕 하다 크게 패하였어요.
백제 장수 8명이 사로잡히고 죽거나 포로가 된 병사가 1천명에 달했어요.
대야성을 되찾은 김유신은 백제군 진영에 사자를 보내서 협상을 요구했어요.
“대야성 성주 김품석과 그의 아내가 너희 나라 감옥에 묻혀 있다. 그런데 너희 장군 8명이 나에게 잡혀 엉금엉금 기면서 살려 달라고 청하는 것을 보니, 나는 여우나 표범도 죽을 때는 머리를 제 살던 곳으로 향한다는 뜻이 생각나 차마 죽이지 못하고 있다. 이제 너희가 죽은 두 사람의 뼈를 보내 살아 있는 여덟 사람과 바꾸는 것이 어떠한가?”
극적으로 대야성과 김춘추의 사위와 딸의 유골을 되찾은 김유신은 승기를 타고 백제 땅으로 들어가 20성을 공격하여 빼앗았어요.
대야성을 잃었던 신라는 김춘추와 김유신의 노력으로 성도 되찾고 당의 원병도 얻을 수 있었어요.
대야성을 되찾는 과정에서 김춘추와 김유신은 신라를 이끄는 대표적인 인물이 떠올랐어요.
신라를 이끈 두 사람의 활약으로 대야성에서 시작된 백제와 신라 사이의 전투는 결국 백제의 멸망으로 마침표를 찍었어요.
신라군이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함락하였을 때 김춘추의 아들 법민이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을 말 앞에 꿇어 앉히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하였어요.
“예전에 너의 아비가 나의 누이를 억울하게 죽여서 옥중에 묻은 적이 있다. 그 일은 나로 하여금 20년 동안 마음이 아프고 골치를 앓게 하였는데 오늘 너의 목숨은 내 손안에 있구나!”
무령왕으로부터 시작해 성왕, 무왕, 의자왕을 이어오며 오랜 기간 준비한 백제의 부활도 이렇게 끝이 났어요.
대야성을 차지하며 신라보다 더 강한 나라를 만들었던 백제는 왜 신라에게 멸망을 당했을까요?
신라의 위기 속에서 내린 김춘추의 결정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