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흥왕 1 페이지 > 한국사

율령을 만들어 널리 알리다
M 지금 0 74 2024.07.01
신라 법흥왕은 지증왕과 연제부인 박씨 사이에서 태어났어요.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 『삼국유사』라는 역사책에 따르면 어릴 때 이름은 원종이었어요.514년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어요. 이후27년 동안 신라를 다스렸지요.키가 7척(약 170cm 정도로 추정됨) 정도이고, 성품이 너그러워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어요.법흥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는 귀족들의 힘이 매우 컸어요.법흥왕은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는 왕권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요.우선 군사 업무를 총괄하는 병부를 설치했어요.병부는 오늘날의 국방부에 해당하는 부서라고 할 수 있는데, 귀족이 아닌 국왕이 직접 군사를 지휘하는 체계를 갖추었어요.법흥왕은 율령도 제정했어요.율령은 죄와 벌을 규정한 형법인 ‘율’과 사회와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각종 제도 등을 규정한 ‘영’을 아우른 명칭이에요.국가 운영을 위한 모든 제도라고 할 수 있어요.이전에는 관습적으로 내려오던 규정에 따랐는데, 이제는 율령을 정하여 백성에게 알림으로써 공식적인 국가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던 거예요.귀족들은 제멋대로 형벌을 내리거나 법을 고칠 수 없게 되었지요.반면에 왕의 권력은 강력해졌어요.병부 설치와 율령 반포법흥왕은 신하들이 업무를 볼 때 입는 옷의 색을 신하들의 위계에 따라 붉은색, 자주색 등으로 정해주기도 했어요.이로써 신하들은 입는 옷까지 왕의 명령을 따라야 했지요.법흥왕은 국왕의 영향력을 강력하게 키워 신하들의 위계질서를 세우려고 했어요.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하다
M 지금 0 74 2024.07.01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들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함으로써 나라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고자 했어요.삼국의 왕들은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새로운 종교가 필요하였지요.이 무렵 중국에서 불교가 전해졌어요.삼국 중 고구려는 4세기 후반 소수림왕 때 가장 먼저 불교를 수용했고, 얼마 후 백제도 4세기 후반 침류왕 때 불교를 받아들였어요.신라에도 5세기 전반에 불교가 전해졌어요.하지만 신라는 불교를 정식으로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왜냐하면 신라 귀족들이 오랫동안 믿어 왔던 기존의 토착 신앙을 불교로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하지만 514년 왕위에 오른 법흥왕은 왕권을 강화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외국에서 들여온 종교인 불교를 활용하고 싶었어요.그렇지만 귀족들의 반대가 눈에 보듯 뻔했기에 고민이 커졌어요.‘나의 권위를 높이고 귀족 세력을 누르기 위해서는 불교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때마침 왕이 아끼던 신하 이차돈이 찾아왔어요.평소 법흥왕의 고민을 잘 알고 있던 이차돈은 왕과 불교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했어요.“전하! 소인은 전하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제 목을 베어 귀족들의 반대를 막으시옵소서.”법흥왕은 죄 없는 신하의 목숨을 빼앗을 수 없다고 하며 거절했지요.그러나 이차돈은 또다시 간청했어요.그의 굳은 결심 앞에 드디어 법흥왕도 생각을 바꾸어 이차돈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다음날부터 이차돈은 귀족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숲이 있는 천경림으로 갔어요.그리고 나무를 베어다가 그곳에 절을 짓기 시작하였지요.이 소식이 알려지자 귀족들은 화가 나서 법흥왕에게 항의했어요.“전하! 이차돈이라는 자가 저희가 토착신을 모시는 천경림의 나무를 베고 절을 짓고 있습니다. 큰 벌을 내리셔야 합니다.”법흥왕은 이차돈을 불러오게 했어요. 이차돈은 자신이 왕의 명령인 것처럼 속여서 나무를 베었다고 했어요.법흥왕은 이차돈과 미리 약속한 대로 왕의 명령을 거짓으로 지어낸 죄를 물어 이차돈의 목을 베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