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하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들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함으로써 나라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고자 했어요.
삼국의 왕들은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새로운 종교가 필요하였지요.
이 무렵 중국에서 불교가 전해졌어요.
삼국 중 고구려는 4세기 후반 소수림왕 때 가장 먼저 불교를 수용했고, 얼마 후 백제도 4세기 후반 침류왕 때 불교를 받아들였어요.
신라에도 5세기 전반에 불교가 전해졌어요.
하지만 신라는 불교를 정식으로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왜냐하면 신라 귀족들이 오랫동안 믿어 왔던 기존의 토착 신앙을 불교로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514년 왕위에 오른 법흥왕은 왕권을 강화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외국에서 들여온 종교인 불교를 활용하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귀족들의 반대가 눈에 보듯 뻔했기에 고민이 커졌어요.
‘나의 권위를 높이고 귀족 세력을 누르기 위해서는 불교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때마침 왕이 아끼던 신하 이차돈이 찾아왔어요.
평소 법흥왕의 고민을 잘 알고 있던 이차돈은 왕과 불교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했어요.
“전하! 소인은 전하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제 목을 베어 귀족들의 반대를 막으시옵소서.”
법흥왕은 죄 없는 신하의 목숨을 빼앗을 수 없다고 하며 거절했지요.
그러나 이차돈은 또다시 간청했어요.
그의 굳은 결심 앞에 드디어 법흥왕도 생각을 바꾸어 이차돈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다음날부터 이차돈은 귀족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숲이 있는 천경림으로 갔어요.
그리고 나무를 베어다가 그곳에 절을 짓기 시작하였지요.
이 소식이 알려지자 귀족들은 화가 나서 법흥왕에게 항의했어요.
“전하! 이차돈이라는 자가 저희가 토착신을 모시는 천경림의 나무를 베고 절을 짓고 있습니다. 큰 벌을 내리셔야 합니다.”
법흥왕은 이차돈을 불러오게 했어요. 이차돈은 자신이 왕의 명령인 것처럼 속여서 나무를 베었다고 했어요.
법흥왕은 이차돈과 미리 약속한 대로 왕의 명령을 거짓으로 지어낸 죄를 물어 이차돈의 목을 베게 했어요.
이때 이차돈이 말했어요.
“전하! 부처님이 계신다면 제가 죽은 뒤 신기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교를 꼭 받아들이소서.”
이 말을 남기고 이차돈은 죽음을 맞이했어요.
그런데 이차돈이 처형되는 순간 목에서 흰 피가 솟구치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어요.
사람들이 서 있던 땅은 크게 흔들렸어요.
이 광경을 본 귀족들은 깜짝 놀랐어요.
법흥왕은 귀족들에게 힘주어 말했어요.
“그대들은 저 신기한 일을 보았는가? 앞으로 우리 신라는 불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것이다.
앞으로 다른 소리를 한 자는 가만두지 않겠다.”
법흥왕은 이차돈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 주고 흥륜사라는 절을 지어 그의 영혼을 위로해 주었어요.
드디어 신라는 이차돈이 죽을 때 나타난 신기한 일들을 계기로 불교를 받아들이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차돈의 죽음 뒤 일어난 신기한 일은 과연 사실일까요?
당연히 사실일 수는 없겠죠.
신라에서 불교를 받아들일 때 토착 신앙을 믿는 귀족들의 반대가 매우 심했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어렵사리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거치면서 신기한 이야기로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이 돼요.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친 끝에 528년(법흥왕 15)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되었어요.
불교는 ‘왕이 곧 부처’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왕을 부처와 같이 섬기도록 해 왕권 강화에 큰 역할을 하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