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유역을 차지하다

개로왕을 붙잡은 고구려군에는 재증걸루라는 백제 출신 장수가 있었어요.
재증걸루는 개로왕을 보고 말에서 내려 절을 하고, 왕의 얼굴을 향해 세 번 침을 뱉고 죄를 꾸짖은 다음 몸을 묶어 아차성 밑으로 보내 죽였어요.
개로왕과 한성 백제 최후의 날
한성백제박물관
신라 구원군을 이끌고 오던 태자는 개로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웅진(공주)로 수도를 옮기고 말았어요.
이제 한성을 중심으로 한 한강 주변의 땅은 고구려의 것이 되었지요.
한성을 차지한 고구려군은 백제가 약해진 틈을 노려 남한강을 따라 계속 세력을 넓혀갔어요.
그 결과 한반도 중부 지역까지 모두 고구려의 땅이 되었지요.
충주에 고구려비가 있는 것도 장수왕 때 이곳까지 영토를 넓혔기 때문이지요.
장수왕의 남쪽 진출
충주 고구려비전시관
장수왕은 아버지 광개토 대왕의 업적을 이어 정복 전쟁을 해 나갔어요.
고구려 북쪽 지역 뿐 아니라 남쪽 지역으로도 진출해 고구려의 영토는 역사상 가장 넓어졌어요.
물론 그의 뛰어난 외교술과 전략이 없었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지요. 이에 장수왕은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끈 왕이 되었어요.
여러분은 북쪽으로 세력을 넓힌 광개토 대왕과 남쪽으로 진출한 장수왕 중 누가 더 뛰어난 활약을 하였다고 생각하나요?
장수왕 시기 고구려의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