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당과 맞서 싸우다

672년 평양에서 황해도 배천까지 남쪽으로 내려온 당군은 신라군의 공격으로 다시 석문으로 올라갔어요.
석문은 황해도에 있는 넓은 들판으로 임진강을 건너 평양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어요.
신라 장창 보병의 모습
신라군은 석문 들판의 남쪽에서 북쪽의 당군을 바라보며 진을 쳤어요.
신라군은 이곳에서 당의 기병을 방어하기 위해 장창 보병을 이용하였어요.
당 기병들이 신라군 진영으로 돌격해오자 신라 장창 보병들 앞에 서있던 궁수들이 화살을 한꺼번에 쏘았어요.
쓰러진 기병들을 넘어 다른 기병들이 가까이 접근하자 궁수들이 뒤로 빠지고 장창 보병들이 이들을 대적했어요.
장창 보병들은 병사를 노리지 않았어요.
이들은 긴 창을 땅에 지지해 세우고 달려오는 말을 겨냥했어요.
맨 앞의 말과 병사가 쓰러지자 뒤따르던 기병들의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어요.
도끼를 든 부월수와 칼을 든 검수들이 주춤하고 있던 기병을 포위하여 하나씩 제거해 갔어요.
이 전투에서 장창을 활용한 신라군은 당군 3천 명을 사로잡았어요.
기분 좋은 승리였어요.
승리에 취한 신라군은 도망가는 당군을 계속 쫓아가며 공격을 했어요.
그러나 너무 정신없이 쫓다 적진 깊숙이 들어가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어요.
이번에는 상황이 역전되어 거꾸로 당군의 공격을 받은 신라군은 대부분의 병사를 잃는 큰 피해를 입었어요.
김유신의 아들 원술도 화랑으로 이 전투에 참가하고 있었어요.
원술은 신라군이 밀리고 있을 때 남은 군사를 이끌고 적진으로 뛰어들려 했어요.
이때 부하가 말의 고삐를 붙잡고 원술을 말렸어요.
“대장부가 죽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죽을 곳을 택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룬 것 없이 죽기보다 살아서 나중에 공을 세우는 것이 참다운 무사의 용기일 것입니다.”
“남아는 구차하게 살지 않거늘, 장차 무슨 면목으로 아버지를 뵙겠는가?”
원술이 말을 채찍질하여 달려 나가려고 하였지만, 부하가 고삐를 놓아 주지 않았어요.
이 때 총사령관의 후퇴 명령이 떨어졌고, 원술도 눈물을 삼키며 다른 군사와 함께 후퇴를 하였어요.
석문 전투에서 신라군이 크게 졌다는 소식은 문무왕에게 전해졌지요.
왕은 신하들을 모아 대책 회의를 했어요.
“석문 전투의 패배를 어찌 하면 좋겠소?”
석문 전투의 패배로 크게 걱정을 하는 문무왕 앞에 김유신이 나서서 말했어요.
“당군의 세력이 크니 요충지에 성을 쌓고 장수와 군사들로 하여금 그곳을 지키게 하옵소서. 비록 신이 늙었으나 직접 적 앞에 나아가 방비할 터이니 너무 심려 마십시오. 다만 원술은 왕명과 가문을 욕되게 하였으니 본보기로 목을 베어 주옵소서.”
“원술에게 무슨 죄가 있겠소. 혼자에게만 무거운 형벌을 내릴 수는 없소.”
왕은 원술의 죄가 없다고 했으나 김유신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며 원술을 보려 하지 않았어요.
원술은 부끄럽고 두려워 감히 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시골에 숨어 살았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