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소성과 기벌포에서 당에 크게 이기다

석문 전투 이후 신라와 당은 서로 눈치를 보며 임진강을 중심으로 서로 대치하고 있었어요.
당군은 칠중성과 매소성을 점령한 후 지금의 의정부 방면으로 남하하는 전진 기지로 삼았어요.
신라군은 3차례에 걸쳐 매소성을 공격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어요.
신라군이 매소성을 정면으로 공격한다는 것은 승산이 없는 일로 보였어요.
그러나 신라군에게 당군을 꺾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남았어요.
이때 당군은 멀리 당으로부터 식량과 무기를 보급 받고 있었는데, 이 보급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면 매소성의 당군을 고립시킬 수 있었어요.
신라는 임진강 하구에 위치한 천성에 함대 1백 여척을 집결시키고 당 보급 함대를 기다렸어요.
쇠뇌와 청동방아쇠뭉치
쇠뇌는 방아쇠 장치를 이용해 화살을 발사하는 무기로 기원전부터 여러 전쟁에서 사용되었다.
신라에서 제작된 천보노는 쇠뇌를 개량한 것으로 1천 보나 화살을 날릴 수 있을 만큼 성능이 뛰어나 당의 황제도 탐을 냈다고 한다.
국립경주박물관
675년, 당의 산둥 반도에서 군량미를 실은 당의 보급 함대가 출발했어요. 보급 함대는 칠중성에 주둔하던 당군과 서로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었지요. 그러나 당 보급 함대가 만난 것은 뜻밖에도 신라군이었어요. 천성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신라군은 당의 보급 함대를 공격했어요. 신라군의 공격에 당의 함선은 모두 불타고 말았어요.
이 전투에서 신라는 당군 1천 4백 명을 죽이고, 병선 40척을 빼앗았어요. 말 1천 마리도 얻었지요. 당군 총사령관 설인귀도 신라군의 포위를 뚫고 간신히 도망갈 정도였어요.
당시 매소성에 주둔하고 있던 당군은 겨울에 접어든 시기에 보급의 어려워지자 매우 불안해했어요. 당군의 사기가 떨어진 것을 알아챈 신라군은 매소성을 기습 공격해 순식간에 빼앗았어요.
매소성을 빼앗긴 당군은 20만의 군사를 동원해 다시 공격해 왔어요. 그러나 이에 맞선 3만 명의 신라군은 죽을힘을 다해 싸워 물리쳤어요. 원술도 이 전투에 참가해 힘껏 싸워 지난날의 치욕을 씻고 큰 공을 세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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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소성 전투
신라군의 공격에 당군은 말 3만 여 필과 많은 무기를 버리고 허겁지겁 북쪽으로 군대를 돌렸어요. 매소성 전투로 당군은 큰 피해를 입었어요. 신라군도 여러 차례 큰 희생을 치르기는 했으나 매소성 전투를 고비로 전세는 신라에게 유리해졌지요.
당군은 매소성에서 패한 뒤로는 육로로 신라의 임진강 방어선을 돌파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였어요. 그래서 육로 대신 금강의 입구인 기벌포를 통해 신라의 측면을 공격하려 하였어요. 기벌포를 장악하면 서해 지역을 모두 장악할 수 있었기에 기벌포는 아주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어요. 당군은 백제를 공격할 당시 13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병력을 상륙시켰던 경험도 있어 전투에 자신만만해 했어요. 신라도 이에 맞서 함선 1백 여척을 이곳에 배치시켜 준비하고 있었지요.
676년, 드디어 설인귀의 당 수군이 기벌포로 내려오자, 신라군도 함선을 이끌고 기벌포 앞바다로 나아가 맞서 싸웠어요. 그리고 크고 작은 전투 수 십 차례를 치렀지요. 전투 결과 신라군은 당의 수군 4천여 명의 목을 베고 크게 승리하였어요. 이렇게 해서 문무왕 10년부터 16년까지 7년간에 걸친 참으로 길고도 험난한 당과의 전쟁은 신라의 승리로 끝이 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