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 백제 부활의 토대를 쌓다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에게 한성(위례성)을 빼앗기고 도읍마저 웅진(공주)으로 급히 옮겨야 했어요.
한성백제가 멸망할 때 무령왕은 열네 살이었어요.
무령왕은 백제가 전쟁에 패하고 개로왕이 고구려군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는 비참한 경험을 하였어요.
웅진에서 왕권 강화에 힘쓰던 동성왕이 반대 귀족 세력에 의해 살해되자 40세의 무령왕이 새로운 백제의 왕이 되었어요.
왕이 된 무령왕은 ‘강한 백제를 만들어 고구려에게 꼭 복수를 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어요.
무령왕은 귀족의 힘이 너무 커진 반면 왕권은 약해졌다고 생각해 귀족들의 힘을 누르는 정책을 취했어요.
그리고 지방에도 귀족들 대신 왕족을 파견해 왕권을 강화했어요.
무령왕은 고구려와의 전쟁과 자연재해로 집을 잃고 거리를 떠돌던 많은 백성들에게 나라의 곳간을 열어 도움을 주었어요.
그리고 백성들이 정착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힘썼지요.
황무지를 개간하고 제방과 저수지도 늘려 쌓았죠. 많은 백성들이 정착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농업 생산량도 많이 늘어났어요.
국가의 경제력이 회복되자 무령왕은 이를 바탕으로 강한 군대를 만들어 고구려와 맞서 싸웠어요.
잘 준비된 백제군은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연이어 승리하였지요.
잃어버렸던 백제의 영토도 많이 되찾을 수 있었어요.
무령왕은 중국과 일본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이전 시기의 강한 백제를 만들기 위한 토대를 닦았어요.
무령왕릉
왕릉에 사용한 무덤 양식과 벽돌은 중국의 기술을 도입해 만들었고, 관은 일본에서 가져온 금송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