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 대왕 신종을 만들다

불교를 깊게 믿었던 신라 사람들도 아름답고 순수한 종소리를 들으면 온갖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신라의 제35대 경덕왕(재위 742~765)도 돌아가신 아버지 성덕왕(재위 702~737)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커다란 범종을 만들고자 하였어요.
754년 경덕왕은 많은 양의 구리를 준비하고 범종을 만들기 시작하였어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종을 만드는 족족 금이 가거나 깨져 실패하고 말았어요. 안타깝게도 경덕왕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범종을 완성하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어요. 경덕왕의 뒤를 이어 어린 나이에 혜공왕(재위 765~780)이 왕위에 올랐어요. 혜공왕은 신하들에게 말했어요.
“선왕 때부터 만들다 실패한 봉덕사 범종을 빨리 완성하세요.”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봉덕사 마당에는 어느덧 많은 신라 사람들이 내놓은 10만여 근의 구리가 산처럼 쌓여 있었어요. 신하들은 종을 잘 만들기로 소문난 장인들을 모두 모아 일을 시작했어요. 온갖 정성을 기울여 노력한 끝에 마침내 종이 완성되었어요. 시험 삼아 종을 쳐도 금이 가거나 깨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종이 제소리를 내지 못했어요. 범종을 치면 긴 여운이 있는 아름다운 소리가 나야 하는데, 무슨 사발 깨지는 소리가 나서 듣기 괴로웠지요.
혜공왕은 하는 수 없이 종을 다시 만들도록 명령하였어요. 처음 만든 종을 녹이고 새롭게 만들었지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을 만들겠다는 신라 사람들의 노력 끝에 771년(혜공왕 7) 드디어 아름다운 종 소리를 내는 범종이 완성되었어요.
“이제야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땅속에서라도 이 아름다운 종소리를 듣고 기뻐하실 것이다.”
혜공왕은 종소리를 듣고 감동하였어요. 그리고 지상에서 듣기 어려운 맑은소리이니 이 종을 ‘신종’이라고 부르라며 명령하였지요. 그래서 봉덕사의 종은 ‘성덕 대왕 신종’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공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여러 가지 구설수도 많았어요. 그 가운데는 종의 소리를 맑게 내기 위해 아기를 넣어 만들었다는 설화가 만들어질 정도였지요. 그래서 성덕 대왕 신종을 치면 아기가 “에밀레 에밀레”하고 우는 듯한 소리가 난다는 것이지요.
사실일까요? 1970년대 한 연구에서 성덕 대왕 신종에서 사람의 뼈에 들어 있는 인 성분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1998년의 조사에서는 인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아기를 넣었다는 전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많아요. 어쨌든 이런 사연으로 성덕 대왕 신종은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렸어요.
그런데 지금 성덕 대왕 신종은 봉덕사가 아닌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볼 수 있어요. 왜 그럴까요? 성덕 대왕 신종은 봉덕사에 걸려 있었어요. 그러다 조선 시대 초 경주 북천가에 홍수가 나 봉덕사가 없어졌어요. 그 후 종은 길거리에서 아이들의 발에 차이고 쇠뿔에 받히는 신세가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