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하다

신라의 진골 귀족들은 녹읍을 소유하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지요.
녹읍은 귀족 관리들이 국가로부터 받은 토지에요.
그 땅에 사는 주민들로부터 토지에 대한 세금을 걷어가고 노동력도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었지요.
실제 그 땅은 진골 귀족이 직접 다스린다고 봐도 될 정도였어요.
신문왕은 진골 귀족들의 힘이 강력해지는 점을 경계했어요.
귀족들은 녹읍을 기반으로 엄청나게 부유해졌어요.
게다가 녹읍으로 받은 땅의 백성들을 군사로 양성할 수도 있으니, 왕은 무척 신경이 쓰였어요.
그래서 신문왕은 토지 제도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였어요.
“문무 관료들에게 토지를 차등 있게 주도록 하라.”
“중앙과 지방 관리들의 녹읍을 폐지하고, 해마다 조를 차등 있게 주고 이를 법으로 삼아라.”
신문왕은 두 차례에 걸쳐 토지 제도를 개혁했어요.
먼저 신하들에게 녹읍 대신 관료전을 주었어요.
그리고 2년 뒤에는 녹읍을 폐지하고, 관리들에게 토지 세금만 거둘 수 있는 권리(조)만 주었지요(689년).
더는 노동력을 마음대로 동원할 수 없게 되었어요.
진골 귀족들의 권력은 점차 약해지고 왕권이 더욱 강해졌어요.
삼국 통일 이후 신문왕은 국가를 잘 운영하려고 많은 일을 했어요.
왕의 자리에 있었던 기간이 10여 년밖에 안 되지만, 정치적인 혼란을 바로 잡고 통일 신라의 기틀을 닦기 위해 토지제도, 지방제도, 교육제도를 모두 손봤으니 말이에요.
덕분에 이후 왕들은 그가 다진 기반 위에 통일 신라의 발전을 꾀할 수 있었답니다.
신문왕이 왜 통일 신라의 기틀을 닦은 왕으로 불리는지 잘 알게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