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의 커다란 불상 이야기

신라는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일단 불교를 받아들인 다음에는 발 빠르게 움직였어요.
흥륜사, 황룡사, 영흥사 등 대규모 사찰을 세우고 불교에 심취한 나머지 자기 나라를 ‘불국토’, 즉 부처가 사는 나라라고 생각했어요.
신라의 자부심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설화가 있어요.
신라 제24대 진흥왕(재위 540~576) 때의 일이었어요.
이 무렵, 나라에서 용궁 남쪽에 궁전을 지으려고 하였어요.
그런데 그 터에서 갑자기 황룡이 나타났어요.
그 일로 궁궐 대신 절을 짓게 되었고 절의 이름을 ‘황룡사’로 지었지요.
황룡사를 모두 지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쪽 바다에 큰 배 한 척이 나타났어요.
나라에서 그 배를 조사해 보니 편지가 있었어요.
“인도의 아육왕(인도의 아소카왕으로 불교를 크게 융성시켰다)이 매우 많은 양의 황철과 황금을 가지고 불상을 만들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배에 실어 바다에 띄워 보냅니다.
원컨대 이 배가 멈추는 곳에 장륙의 불상을 이룩하여 모시도록 하십시오.
아울러 이 배에 불상 하나와 보살상 두 개를 함께 실었습니다.”
신하에게 이 소식을 듣게 된 국왕은 배가 도착한 지방(하곡현)에 ‘동축사’라는 절을 짓게 하고 배에 실렸던 불상과 보살상을 법당에 모셨어요.
또 함께 실려 있던 철과 황금으로 커다란 불상을 만들기 시작해 얼마 후에 완성했어요.
그리고 그때 새로 만든 불상은 황룡사에 모셨어요. 그리고 이듬해의 일이었어요.
장륙불상(크기가 매우 큰 불상)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해 바닥을 1척이나 적셨어요.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는 왕이 세상을 떠날 징조라고 여겼지요.
한편 황룡사의 불상에는 또 다른 기록도 전해지고 있어요.
인도의 아육왕이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받들려고 불상을 세 번이나 만들었지만 모두 실패했어요.
더구나 아육왕의 태자는 불상 만드는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이에 아육왕이 못마땅하여 물었어요.
“태자는 왜 불상 짓는 일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냐?”
태자가 대답하였어요.
“폐하, 그건 혼자의 힘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저는 일찍이 그 사실을 알았지만 일부러 모른 체했던 것입니다.”
아육왕은 이때 느낀 바가 있어서 불상을 만들 수많은 황철과 황금을 배에 싣고 바다로 띄워 보냈던 것이에요.
그 뒤 배는 바다를 끼고 있는 수많은 나라에 도착했지만 어떤 나라에서도 불상을 만들지 못했어요.
그에 따라 마지막으로 신라에 도착했는데 마침내 진흥왕이 그 일을 마칠 수 있었어요.
한편 그 소식을 듣게 된 아육왕은 비로소 근심을 떨쳐 냈다고 전하고 있어요.
삼국 시대의 다양한 불상을 잘 만나 보았나요?
이제 불상이 낯설지 않을 거예요.
불상을 통해 우린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어요.
앞으로 불상을 만나면 더 친하게 볼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