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한강유역 쟁탈 1 페이지 > 한국사

신라, 나제동맹을 깨고 한강을 모두 차지하다
M 지금 0 87 2024.07.04
백제는 고구려의 공격으로 수도 한성을 빼앗겼던 치욕을 당했기 때문에 옛 수도와 한강 유역 지역을 되찾는 일이 매우 중요했지요.백제는 신라, 가야와 동맹을 맺고 꾸준히 국력을 키웠고, 고구려의 혼란은 한반도 남쪽 여러 나라에게 절호의 기회가 되었어요.러나 한강 상류를 차지한 신라는 백제와의 동맹을 깨버렸어요.553년 신라 진흥왕은 한강 전체를 차지할 욕심에 동맹을 깨고 백제군을 공격하였어요.갑작스러운 공격에 백제군은 한강 하류 지역을 모두 잃었어요.신라의 배신에 분노한 백제 성왕은 태자를 총사령관으로 삼아 신라를 공격하게 했어요.백제군과 신라군은 지금의 충청북도 옥천에 있던 관산성에서 만났어요.관산성은 남쪽으로 추풍령이라는 고개만 넘으면 신라 수도 금성(경주)으로 갈 수 있는 곳으로 군사적 요충지였죠.그곳에서 두 나라는 일진일퇴를 반복하며 치열한 전투를 벌였어요.보은 삼년산성한국문화원연합회백제 성왕은 계속된 전투에 지친 군사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해 약간의 호위병만 거느리고 관산성으로 갔어요.그런데 삼년산성에 있던 신라군이 이를 눈치채고 기습하여 성왕을 사로잡았어요.안타깝게도 성왕은 목숨을 잃고 말았어요.왕을 잃은 백제군은 관산성에서 크게 패하였고, 한강 하류 지역도 신라의 땅이 되었어요.한강을 모두 차지한 신라 진흥왕은 크게 기뻐하며 북한산에 순수비를 세웠어요. 이비석을 세워 한강 지역이 신라의 땅임을 확실히 증명하려는 것이었지요.
한강을 차지한 신라, 삼국을 통일하다
M 지금 0 139 2024.07.04
진흥왕 이후 신라는 귀족들의 권력 다툼과 자연재해로 국력이 약해지고 있었어요.한편, 신라의 배신으로 영토와 왕을 잃은 백제는 울분에 차 있었지요.그래서 백제는 고구려와 손을 잡고 신라를 공격하였어요.신라는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어요.관산성에서 크게 패한 후 백제의 국력은 약해졌지만, 무왕의 노력으로 빠르게 회복되었어요.의자왕 때는 소백산맥을 넘어 대야성을 비롯한 수십 개의 성을 빼앗기도 했지요.그리고 고구려도 군대를 정비하여 동쪽의 많은 땅을 되찾기도 했어요.결국 백제와 고구려의 협공으로 신라는 큰 위험에 빠졌어요.신라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상황에서 당과의 연합을 추진했어요.선덕여왕의 명을 받은 김춘추는 한강 하류의 당항성을 통해 바다를 건너 당으로 갔어요.김춘추는 신라와 당의 연합을 이루어 냈지요.이에 660년 신라군과 당나라군은 백제의 수도 사비(부여)를 공격했고, 나당 연합군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한 백제는 결국 멸망하고 말았어요.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간의 전쟁에서 아주 중요했던 지역을 떠올릴 수 있지요? 바로 한강입니다.한강은 한반도의 중심에 있는 큰 강이지요.지금 서울 중심부를 흐르고 있지요.이 한강과 그 주변 지역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에요.넓은 강 유역은 농사짓기에도 좋았고, 북한강과 남한강에 연결되어 교통로 역할도 했지요.삼국 시대에는 한강 유역을 어느 나라가 차지했는지가 국력에 큰 영향을 주었답니다.결국 신라는 한강을 차지하면서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지요.7세기 초 삼국의 영토
온달 장군은 어디서 전사했을까?
M 지금 0 71 2024.07.04
왕의 허락을 받은 온달 장군은 군대를 이끌고 죽령의 서쪽 땅을 되찾으러 떠났어요.그리고 아단성 아래에서 용맹하게 싸우다가 날아온 화살에 맞아 전사했어요.전사한 온달 장군을 백성들이 모셔 장사지내려 했으나 관이 바닥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어요.이때 소식을 듣고 달려온 평강공주가 관을 어루만지면 말했어요.“삶과 죽음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편히 돌아가세요.”평강공주의 말이 끝나자 관이 움직여 장사를 지낼 수 있었어요.이로써 한강을 되찾으려던 온달 장군의 노력은 끝이 났어요.아단성을 공격하는 온달 장군고구려 온달 장군이 전사한 아단성은 과연 어디일까요?그 위치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주장이 있어요.첫 번째는 온달산성이라는 주장이에요. 온달 장군이 죽령 서쪽 땅을 되찾기 위해 출전하였는데, 죽령 근처의 산성 이름이 고구려 때 ‘을아단(乙阿旦)’이라고 불렸대요.그래서 온달산성이 아단성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요.두 번째는 아차성이라는 주장이에요.고구려와 신라는 주로 한강 하류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기 때문에 남한강의 온달산성은 너무 거리가 멀어 온달 장군의 접근이 어려웠으리라 추측하고 있어요.한자도 아차성(阿且城)과 아단성(阿旦城)이 매우 비슷하고요.『삼국사기』‘온달전’ 속 이야기는 당시 한강 지역을 둘러싼 고구려와 신라의 치열했던 대결을 담고 있어요.온달 산성처럼 고구려, 백제, 신라가 나라의 운명을 걸고 대결했던 장소를 또 찾아보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