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에 전해진 백제 문화

삼국은 중국과 서역 외에도 동쪽으로 이웃해 있던 왜, 즉 지금의 일본과 교류했어요.
우리 조상들은 삼국 시대 이전부터 새로운 생활 터전을 개척하기 위해 왜로 건너갔고, 그 이후에는 왜의 요청으로 학자와 승려, 기술자들이 많이 건너갔지요.
그래서 일본 고대 문화의 유적과 유물 중에는 삼국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 많답니다.
칠지도는 4세기경 백제왕이 왜왕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칼이에요.
양쪽으로 뻗은 6개의 가지와 가운데 날을 합쳐 모두 7개의 갈래로 나뉘어 있어 칠지도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길이 74.9cm의 칼 앞뒤 표면에는 62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아요.
이전에는 이런 칼이 없었는데 백제왕의 어진 지시를 받들어 왜왕에게 만들어 주노니 후세에 길이 전하라.
당시 왜는 철기 문화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백제의 철기 문화에 크게 의존하였어요.
백제에 온 왜의 사신이 돌아갈 때 쇳덩이 40개를 받았고, 그 후에도 백제가 칼과 거울을 왜에 보내 준 기록이 『일본서기』에 남아 있어요.
칠지도는 철을 매개로 하여 백제와 왜가 교류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대표적인 유물이에요.
칠지도(일본 나라 이소노카미 신궁 소장)
동북아역사재단
또한 백제는 4세기에 아직기가 일본 태자에게 한자를 가르쳤고, 왕인은 『논어』와 『천자문』을 전하고 가르쳤어요.
6세기에는 노리사치계를 파견하여 불상과 불경을 전해주며 불교를 전파하였어요.
일본에는 지금 남아 있는 건물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호류사라는 절이 있어요.
당시 7세기 초에 왜를 실질적으로 다스리던 쇼토쿠 태자가 지은 절인데, 백제와 고구려의 기술자들이 공사에 참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백제의 정림사지 5층 석탑과 일본의 호류사 5층 석탑을 비교해 보면 재질과 규모는 다르지만 두 탑이 비슷한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현재 호류사에 있는 불상과 공예품 역시 대부분 백제의 기술자들이 만들었다고 전해져요.
일본이 자랑하는 백제 관음상도 백제의 영향이 강한 불상이지요. 쇼토쿠 태자는 삼국과 중국의 불교 문화를 받아들여 일본에 아스카 문화라고 불리는 불교 문화를 꽃피웠어요.
그런데, 백제는 왜 자신의 선진 문화를 왜에 전해주었을까요?
백제가 왜에 각종 문화를 전한 것이 단지 은혜를 베푸는 차원은 아니었어요.
삼국이 서로 나뉘어 다투던 시기에 백제는 왜와 긴밀한 군사적 동맹 관계를 맺고 고구려와 신라에 대항하였지요.
이때 왜는 백제가 어려울 때마다 대규모의 군대를 파견하여 도왔어요.
어떤 이유에서 왜가 백제를 도왔을까요?
왜가 큰 이득도 없는데 무작정 의리 때문에 백제와 군사적 동맹 관계를 맺지는 않았겠죠?
즉, 당시 문화 전파의 배경에는 군사적 지원이 필요한 백제와 선진 문물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왜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고 할 수 있어요.
백제 정림사지 5층 석탑(충남 부여군)
일본 호류사 5층 목탑
동북아역사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