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 석탑

백제 무왕 때 세워졌다고 전하는 미륵사는 현재 건물은 없고 그 터에 탑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미륵사 터에 있는 탑이라는 뜻으로 미륵사지 탑이라고 이름이 붙여졌어요.
미륵사는 3개의 금당(불상을 모셔 놓은 건물)이 나란히 늘어서고 금당마다 탑이 하나씩 있도록 설계되었어요.
3개의 절이 모여 하나의 큰 절을 이루는 형식처럼 지어진 대규모 사찰이었지요.
또 3개의 금당(동원, 중원, 서원)은 각기 긴 회랑(건물에서 지붕이 딸린 복도)으로 구획되어 독립된 공간을 이루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1동의 큰 강당 터로 연결됩니다.
강당 북쪽에는 인공 물길 위에 두 개의 다리를 놓아 뒤편의 후원 지역으로 연결했어요.
다음 그림은 미륵사의 옛 모습을 상상하여 그린 것이에요.
미륵사 상상도
사실 미륵사지 석탑은 슬픈 과거가 있습니다.
이 석탑은 조선 중기인 16세기를 전후해 미륵사가 문을 닫으면서 상당 부분이 훼손된 채 방치되어 있었어요.
이후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총독부는 문화재 보전에 대한 기본 지식 없이 미륵사지에 대해 날림으로 발굴 조사를 했어요.
특히 1915년 벼락에 맞아 무너져버린 서탑에 대해 옛 기록이나 건축 양식에 대해 사전에 연구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보수 공사를 하기로 결정했어요.
이에 따라 무려 185t에 이르는 콘크리트를 서탑에 들이부었습니다.
콘크리트는 탄산칼슘 등의 성분으로 인해 백화현상과 풍화작용을 촉진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어요.
일본의 졸속한 복원 공사가 오히려 문화재를 크게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게다가 덕지덕지 발라놓은 콘크리트는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미륵사지 석탑을 그저 흉측한 몰골의 돌덩어리로 둔갑 시켜 버렸어요.
사진을 통해 콘크리트를 발라 놓은 미륵사지 석탑의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요.
한편, 터만 남아 있던 미륵사지 석탑의 동탑은 4년간의 공사를 거쳐 1993년 복원 완료했어요.
그런데, 이 복원 사업은 나쁜 문화재 복원 사례로 평가받고 있어요.
왜냐하면 충분한 조사를 하지 않은 채 단순히 서탑의 형태를 모방해서 만들었기 때문이죠.
동탑과 서탑이 같은 형태인지, 또 같은 층수인지에 대한 자세한 연구 없이 복원 사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어요.
그래서 1998년에 해체·보수가 결정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서탑은 동탑에서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신중하게 보수 공사를 진행했어요.
또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복원하지 않고, 남아 있는 돌들을 이용해 확실한 부분까지만 보수 공사를 하기로 했어요.
2000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시작해 20년 만인 2019년에 일반에 공개하게 되었어요.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 공사 전과 후의 모습
국립문화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