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남대총에 로만글라스가 묻힌 까닭은?

황남대총 발굴 당시 금과 은으로 만든 유물과 함께 180여 개의 유리 조각들도 출토되었어요.
깨진 작은 유리 조각들은 처음에 크게 눈길을 끌지 못했어요.
하지만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자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로만글라스
문화재청
복원된 유물은 새의 머리 모양을 한 유리병과 유리잔이었어요.
이 유리병은 유리 성분을 분석해 보니 옛 로마제국에서 만든 것이었어요.
1500여 년 전 신라에, 그것도 아시아 서쪽 끝에 있던 로마제국의 유리병이 동쪽 끝의 신라에서 발견되었으니 무척 신기한 일이었어요.
유리는 5천 년 전 지중해 동쪽 연안에서 생활하던 상인들이 우연히 처음 발견했어요.
그리고 기원전 1세기 쯤 이 지역의 유리 장인들이 ‘대롱불기’라는 기술을 개발하면서 본격적으로 유리그릇이 제작되기 시작했어요.
대롱불기로 유리그릇 만들기
‘대롱불기’는 녹은 유리 덩어리를 금속관(대롱) 끝에 매달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어 유리를 부풀려 그릇을 만드는 기술이에요.
유리 장인들은 대롱불기 기술로 얇고 투명한 유리그릇을 만들 수 있었고, 다양한 모양의 유리제품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 기술은 로마에 전해졌고, 로마와 함께 유리그릇은 전 세계로 수출되었어요.
남아 있는 기록이 없어 유리그릇들이 어떻게 신라까지 와서 고분에 묻혔는지는 알 수 없어요.
다만 초원길이나 바닷길 등 당시 동서양을 이어주던 교역로를 통해 중국과 고구려를 거쳐 신라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어요.
지금도 유리그릇에 대해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많이 남아있어요.
하지만 왕과 함께 묻힌 유리그릇들을 통해 당시 신라인들이 금과 함께 유리그릇을 매우 귀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또한 먼 옛날부터 우리나라가 멀리 떨어진 서역이나 로마와도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유리그릇은 증명하고 있어요.
동서교역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