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당과 화해정책을 펼치다

중국의 수가 고구려 침략에 실패한 이후 멸망하고, 당이 다시 중국을 통일했어요.
당을 세운 고조는 수가 멸망한 까닭을 생각하며 고구려와 화해 정책을 펼쳤어요.
고구려에서는 수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양왕이 죽고 영류왕이 왕이 되었어요.
영류왕도 당과 화해 정책을 펼쳤어요. 비록 수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고구려의 피해도 상당했기 때문에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어요.
수와의 전쟁에서 붙잡은 포로들을 당에 돌려보내 주기도 했고, 고구려 지도를 보내면서 전쟁을 할 뜻이 없음을 밝히기도 했어요.
그러나 당 태종이 황제가 되면서 분위기는 바뀌어 갔어요.
당의 서쪽에 있던 돌궐을 점령하여 근심거리를 없앤 당 태종은 영류왕의 화해 손짓에도 계속 무례한 행동을 이어갔어요.
당의 강압적인 태도에 고구려는 부여성에서 비사성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으며 당의 침략에 대비하였어요.
또다시 고구려에 전쟁의 기운이 커져만 갔어요.
여러 성들을 연결하여 쌓은 천리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