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운명을 걸고 당과 전쟁을 하다

당의 공격과 고구려의 반격
644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당 태종은 왕을 시해한 연개소문을 벌한다는 명분으로 50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해 왔어요.
수의 침략 때와는 달리 병사의 수는 적었으나 훈련이 잘된 병사들로 이루어진 군대였어요.
당군의 공격에 고구려의 국경선을 지키던 요동성과 백암성 등이 차례로 무너졌어요.
당군은 이어 안시성을 향했어요.
안시성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격이 쉽지 않은 요새였어요.
연개소문도 15만 명의 군사를 보내 안시성의 고구려군을 돕게 했어요.
그러나 안시성을 향하던 고구려군이 당군의 유인 작전에 말려들어 크게 패하고 말았어요.
구원병도 없이 포위된 안시성 성주와 백성들은 하나가 되어 목숨을 걸고 당군과 맞서 싸웠어요.
당군이 포차라는 투석기로 성벽을 무너트리면 통나무로 다시 벽을 쌓아 적을 막았어요.
당군이 안심하고 한눈을 팔고 있으면 고구려군이 직접 성을 나와 공격하기도 했지요.
한 달 가까운 공격에도 안시성이 무너지지 않자 당 태종은 초조해졌어요.
부족한 식량은 먼 길을 온 당군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였어요.
당 태종은 하루에도 6~7회씩 안시성의 서쪽을 공격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의 동남쪽에 흙을 쌓아 성벽보다 높은 산을 쌓게 하였어요.
60일 동안 쌓은 토산의 꼭대기는 안시성보다 더 높아 성안을 내려다보며 공격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갑작스러운 폭우로 완성된 토산이 무너져 성벽을 덮쳤어요.
토산을 이용한다면 당군은 손쉽게 성벽을 넘을 수 있었어요.
안시성의 가장 큰 위기였죠.
그러나 고구려군은 재빨리 이 틈을 이용했어요.
거꾸로 성문을 열고 나와 그 토산을 점령해 버렸지요.
공들여 쌓은 토산을 고구려군에게 빼앗기자 당 태종은 불같이 화를 냈어요.
그리고 토성을 다시 빼앗기 위해 3일 밤낮으로 맹렬히 공격했어요.
하지만 고구려군의 끈질긴 저항으로 당 태종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어요.
토산을 빼앗긴 당군에게는 더 큰 문제가 있었어요.
안시성에서 발목이 잡힌 지 어느덧 90여 일, 겨울이 오고 있었어요.
날이 추워지고 식량이 부족해지자 당 태종은 어쩔 수 없이 안시성의 포위를 풀고 당으로 도망을 갔어요.
고구려군은 도망가는 당군의 뒤를 공격하여 큰 전과를 올렸어요.
당군이 쌓은 토산을 점령한 고구려군
중국 역사에서 최고의 황제 중 한 명이라 평가받는 당 태종은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크게 패한 후 4년 만에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어요.
“나의 자식들은 고구려를 공격하지 마라. 너희들이 이길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당 태종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뒤를 이은 당 고종은 고구려와의 전쟁을 멈추지 않았어요.
고구려를 이기지 못하고서는 당이 천하의 중심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고종은 당 태종의 실패를 교훈 삼아 대규모 군대보다는 규모가 작은 군대를 자주 보내 고구려를 공격했어요.
이 작전으로 고구려의 국력을 조금씩 없애려는 속셈이었지요.
20년이 넘는 오랜 기간 고구려는 전쟁에 시달렸고, 고구려 백성들도 지쳐만 갔어요.